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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들/독서와 감상

잊혀지는 것, 그리고 쓸쓸한 碑

by 카프카뮈 2022. 4. 10.

사람이 죽는다. 명멸하다가 결국 빛이 사그라들고 없어진다. 

그러나 그 존재의 개념 자체가 없어지는가. 그 사람이 기억되고 이야기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온전히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과거 역사 속 압제자와 군주들, 그리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죽여 없애고 싶어하던 이들은

그들의 이름을 지웠다. 칼로 후벼내고, 먹물로 덧칠했다.

 

사람들 속에서, 역사 속에서 잊혀진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죽음인가.


서안 건릉의 무자비. 글자 없이 비만이 오롯이 세워져 있다.

갑자기 떠오른 단상.

중국 역사의 유일무이한 여제 측천무후는 자신의 비를 무자비, 즉 글자가 없는 비석으로 만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동진의 사안이라는 이는 위대한 업적과 공을 글로 담을 수 없어 무자비를 만들었고,

송대의 진회는 오명을 너무나 크게 남겼기에 글로 남길 수 없어 무자비를 만들었다.

측천무후는 어느 쪽인가. 아마도 사안처럼 중국사 유일의 위업을 남길 수 없어 무자비를 청했겠으나

내심 그녀가 잊혀지기를, 가장 극적인 자살을 꿈꾼 것은 아니었을지 상상해본다.


I met a traveller from an antique land
Who said: Two vast and trunkless legs of stone
Stand in the desert. Near them, on the sand,
Half sunk, a shattered visage lies, whose frown,
And wrinkled lip, and sneer of cold command,
Tell that its sculptor well those passions read
Which yet survive, stamped on these lifeless things,
The hand that mocked them and the heart that fed:
And on the pedestal these words appear:
"My name is Ozymandias, king of kings:
Look on my works, ye Mighty, and despair!"
Nothing beside remains. Round the decay
Of that colossal wreck, boundless and bare
The lone and level sands stretch far away.

나는 고대의 나라에서 온 여행자를 만난 적이 있네.
그가 말하길 '돌로 되어 거대하지만 몸통은 없던 두 다리
사막에 서 있었네.

근처 모래 위에는
반쯤 묻힌 깨진 두상이 누워있었는데, 그 표정이 찌푸려져 있고,
주름진 입술엔 독선의 냉소가 감돌고 있었기에,

조각가에게 말하길 "왕의 정열을 잘 읽었구나.
그것을 조각한 조각가의 손과 그것에 생명력을 부여하던 왕의 심장을 뛰어넘어
생명없는 물체 위에 각인된 채로 살아남았소."

그리고 받침대 위에는 이런 글들이 적혀있었네-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
너희 강대한 자들아, 나의 위업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

그 옆엔 아무것도 없었네. 뭉툭하게 삭아버린
그 엄청난 잔해의 주위로, 끝이 없고 황량하며,
외롭고 평탄한 모래 벌판이 멀리까지 뻗어 있었네.'


 

퍼시 셸리가 썼다는 소네트  「오지만디아스(Ozymandias)」는 또 어떤가.

고대의 왕 오지만디아스는, 자신의 위업을 보고 절망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여행자의 눈 앞에는 부서진 잔해들과, 외롭고 평탄한 모래 벌판만이 존재할 뿐이다.

 

무자비를 명한 측천무후는 진정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겠으나

오지만디아스는, 진정한 죽음을 맞을 줄이나 알았으려나.


마무리는 류츠신의 『삼체』.

문명의 멸망을 앞두고, 인류는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마지막 기록을 남긴다.

1억년 뒤에도 잊혀지지 않을 기록이 있을까. 그러나 양자 메모리도, USB도, 인쇄된 종이조차 1억년은 버틸 수 없었다.

 

"그들이 말하더군. 현대 과학의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수많은 이론 연구와 실험 결과를 분석한 끝에 1억년 동안 정보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현재 알아낸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강조했어. 그 방법은 바로......"
뤄지가 지팡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그의 백발과 수염이 춤을 추듯 너울거렸다. 그가 홍해를 가르는 모세처럼 엄숙한 말투로 외쳤다.

"돌에 글씨를 새기는 거라고!"

류츠신, 『삼체 3부: 사신의 영생』, 허유영, 단숨(2019) 662p.

여기서 근래 읽고 있는 최은영의 우울한 조소를 더한다.

이 글의 모든 고민이 시작된,  『밝은 밤』의 1부 마무리이다.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지구가 수명을 다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이 오면 시간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때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

최은영, 『밝은 밤』, 문학동네(2021) 82p.

다음에는 그럼에도 기억하고 되살리고자 노력하는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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