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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들/독서와 감상

시대의 고통을 마주하는 윤리,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읽는 법

by 카프카뮈 2021. 7. 28.

이 글은 2019년, 황정은 작가의 신작 『디디의 우산』을 읽고 써본 에세이이다.

『디디의 우산』의 경우 2010년 발표된 「디디의 우산」과 2014년에 발표된 「웃는 남자」로 이어지는 연작의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이 연작에서 벗어나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함께 수록하기에 문제가 되기도 하고,

아무래도 분석해볼 여지가 많은 작품인지라. 당시에 분석에 꽤 공을 들였다.

 

지나고 보니 참 러프한 글이지만. 써둔 것두 아쉽구 황정은의 멋진 작품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될까 하여.

이번에 출간된 『연년세세』도 집중해 읽었던 터라, 추후 이어지는 글을 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길고 긴 이야기입니다. 10년동안 써내리는 어느 작가의 노력이란.


분석해야 할 문제들

올해 1월 출간된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1]은 문제적인 작품이다. 『디디의 우산』은 두 개의 단편, d[2]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3]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집인데, d」의 경우는 이전 작품들의 후속작임을 작가가 스스로 밝힌 작품임에도 이전 작품들과의 차이가 눈에 띈다는 점에서,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작가의 다른 소설들과 달리 내용상의 과잉이 심하다는 점에서 해석의 어려움이 생긴다.

 

본 글은 위 두 작품 중 주로 「d」의 문제, 즉 「디디의 우산」[4]에서 「웃는 남자」[5], 그리고 그것이 다시 「웃는 남자」[6]로 발표되고 「d」로 수정되어 실릴 때까지의 흐름을 살필 것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분석할 때 앞선 「웃는 남자」 연작들의 분석에서 얻은 독법을 바탕으로, 2019년 『디디의 우산』 단행본 출간과 함께 수정된 「웃는 남자」d」의 관계를 살피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황정은 작가의 초기 작품세계 파악(2005 – 2010)

2005년 「마더」로 등단한 이래, 두 권의 단행본(『일곱시 삽십이분 코끼리열차』[7], 『파씨의 입문』[8])이 나올 때까지의 7년동안 황정은의 작품세계는 대체로는 일관성을 띄는 편이다. 작중의 인물들을 누르는 빈곤의 무게, 경제적인 탓으로 동시에 낮아지는 인물들의 사회적 계급(그리고 그것이 주는 폭력’), 그리고 거기에 맞서 싸울 수 없기에 인고해야 할 고통들. 처음에는 자살하거나(「마더」), 도망치지만(「소년」), 이후 창작이 계속되면서 황정은 작가만의 고통에 맞서는 독특한 서사 방식환상성이 생긴다.

 

「모자」에서 삼형제의 아버지는 가끔씩 모자가 되었다가 다시 돌아오고, 이웃들이 그것을 영 불쾌한 일로 생각해 가족들은 언제나 이사를 다닌다. 「오뚝이와 지빠귀」에서 기조라는 여성은 조금씩 작아지다 어느 순간 오뚝이가 되어 계속 흔들흔들 움직이고 때때로 방울 소리를 낸다. 사회적인 계급의 문제와 경제적인 힘의 문제 그리고 그 탓으로 남들에게 받는 (물리적인 혹은 그렇지 않은)폭력의 문제는 이 소설들에서 메타포로 흐릿하게 보이지만, 그것이 모자오뚝이라는 방식으로 표현되고, 또한 그것이 세계 안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인물들이 당면한 문제는 우스워진다. 그렇기에 모자가 된 아버지가 아무곳에나 떨어질까봐 그의 자식들은 벽에 못을 박아두고, 오뚝이가 된 기조씨가 어느 날부터 방울소리를 내자 그의 연인 무도는 찾기 편하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2010년 전후에 접어들어, 황정은 작가의 작품에서 환상성은 다시금 현실에 자리를 내어주고, 빈곤과 폭력의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로 다시 고개를 든다. 아마도 용산에서 일어난 사고들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었던 이 흐름은, 『백의 그림자』[9]에서 명확히 이름지어진(이전까지 거의 모든 작품들이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이니셜이나 가명, 혹은 허무맹랑한 이름으로 채웠음을 생각할 때 이례적이다) 세운상가의 사람들과, 그들의 그림자라는 환상적인 존재가 공존하는 과도기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한편 황정은 소설의 현실성 강화는 2011년 발표된 「양산 펴기」[10]에서 「디디의 우산」과 유사/차이점을 가지고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사이에 존재하는 2010년 발표작 「디디의 우산」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내야 할까.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 : 「디디의 우산」(2010)

「디디의 우산」은 작가의 이전 작품들처럼 인물들의 이름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이니셜로 대체하고 있고, 인물의 설명에 있어서도 성장기를 빈칸으로 둔 채 유년시절과 현재만을 보여주고 있기에 인물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가 어렵다. 그러나 이전 작품들의 흐름을 바탕으로 볼 때에 이 부분은 작가의 특징으로 이해하고 텍스트에서 주어지는 상황을 바탕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었으며, 본 글에서도 그러한 방식을 택하였다.

 

디디의 우산에서 제일 부각되는 것은 주인공 디디와 도도의 노동의 문제이다. 산업 재해를 겪으며 불합리한 팀장의 말을 믿는 순진한 디디는 회사의 경영난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전환될 위기에 처한다. 한편, 공항에서 식기 세척 일을 하는 도도는 독한 약품때문에 몸에 발진이 나지만 의사는 그러면 일을 하지 마시라라고 말할 뿐이다. 불안하고 위험한 노동자의 위치, 경제/사회적으로 아래층에 위치한 디디와 도도는 이해받을 필요가 없는사람이 되고, 그렇기에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없는 의사와 점장은 그들에게 노동을 그만두거나, 혹은 계속 일하거나 라는 고를 수 없는 선택지를 준다.

 

한편, 디디는 버스에서 혁명을 읊조리며 경제적인 혁명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 돈,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도록 만드는 어떤 것들[11]. 혁명은 그것을 뒤집거나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지만, 디디는 혁명을 말하고 스스로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았을지 염려한다. 혁명은 현실적인 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에그래서 그것을 말하는 것은 이상한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디가 혁명을 생각하며 떠올리는 것은 어릴 적 본 만화책이나 가슴을 드러낸 여성의 그림이다. 혁명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격 혁명을 떠올리는 도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그들에게 혁명이라는 말은 현실적인 울림을 주지 못하고, 가난의 탈출구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경제적인 대립의 바깥에서, 디디는 어릴 적 도도가 자신에게 우산을 빌려줬던 일을, 그리고 자신이 경제적 여건의 탓으로 그것을 돌려주지 못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때의 기억은 디디에게 깊게 남아있어, 디디는 가족들의 수보다 조금 많게 우산을 늘 준비한다고 작중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소설의 결말부에서도 묘사되는 다른 사람의 우산을 챙긴다라는 것은 무슨 의미로 읽힐까. 그것은 자신의 경제적인 손해를 감안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상처받을(비를 맞을) 것을 염려하는 일이며,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비를 맞는 이가 없어야 하기에 우산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연결된다. 앞서 인용한듯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세계에서, 돈보다도 다른 사람의 비맞음을 염려하는 것은 그 자체로 혁명이다. 그렇기에 소설 속에서 혁명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부시에게 신발을 던진 이라크 기자의 이야기처럼 (황당하기에) 우스운 이야기가 되지만, 디디의 생각은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이다.

 

신발을, 웃기잖아, 역시 웃기다, 이게 웃기지 않을 사람 있을까.
부시는 뭐 웃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건 어쩐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2]

 

물론 우습다의 의미를 생각했을 때엔 다른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어쨌든 상처받는 이가 존재할때 그의 입장에서는 어떨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 「디디의 우산」은 그렇기에 현실을 그리고 있음에도 작가의 환상적으로 우스꽝스러운 다른 단편들 이상으로 유쾌하게 읽힌다.

 

나는 이해한다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 「웃는 남자」 (2014)

「디디의 우산」 이후, 황정은 소설의 환상성이 확실하게 줄어들고 현실의 영역이 늘어남과 함께 폭력상실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이유로 주류가 되지 못한 개개인들은 폭력의 대상이 되고, 대항하여 싸울 수 없기에 인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야만적인 앨리스씨』[13]와 『계속해보겠습니다』[14]에서 (여전히 이름도 정체도 모호한) 등장인물들의 현실적인 가난과 폭력을 그린 황정은은, 2013-2014년에 한편으로 상실인내를 주제로 하는 여러 단편 소설을 써냈다.

 

그 예로 「상류엔 맹금류」[15]를 보자. 주인공의 남자친구 제희는 부모님의 빚을 갚느라 누나들과 고된 생업을 이어가며 살고 있고, 제희의 부모님은 전쟁의 상처를 안고 또한 세월의 상처들(일본에서 일하느라 생긴 흉이 머리에 남고 또한 노동의 결과로 한쪽 폐를 잃어 관을 꽂고 사는 아버지와, 한편으로 실향민으로 살아온 고된 삶의 탓으로 심적인 고통을 겪는 어머니)을 가진 채 살아간다. 이들과 함께 간 수목원에서, 모든 것은 엉망진창이지만 제희는 이를 감내하고 분위기를 띄우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밥을 먹고자 자리잡은 물가가 맹금류 우리의 하수구 아래임을 알았을 때, 주인공은 이들에게 저 물이 다, 짐승들 똥물이라고요라고 말한다. 이후 제희와 헤어진 주인공이 이때의 일을 떠올리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했을지 고민하며, 한편으로 그것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하지만 사실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고, 그렇기에 소설 읽기는 복잡해진다. 제희와 제희의 부모님이 잘못된 삶을 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희의 빚은 제희의 부모가 사기를 당했을 때 야반도주하지 않고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느라 생긴 것이고, 제희의 빚 갚기 역시 자신을 키워준 부모에게 선의의 책임을 가지고 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그것은 추하게 보이는 일이고 또한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경제적 상류의 똥물을 받아먹는 일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결국 그들을 떠나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행동을 항변한다.

 

이렇게 숭고하지 못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려내는 황정은 작가는, 「웃는 남자」에서 경제적인 영역에 상실의 문제까지 더하여 인내하는 사람들을 만든다. 딱히 솜씨가 좋지는 않지만 어쨌든 40년간 일해서 집을 한 채 두고 살아가는 아버지, 그리고 연인을 사고로 잃은 아들, 이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간다’. 먼저 아버지의 경우를 보자.

 

아버지는 자신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되었고, 사람들에게 알아?”라고 물으며 자신의 지식이 옳음을 단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엉망인 솜씨로 물건을 만들어 팔고 허름한 집을 사 자신보다 더 못사는 사람들에게 세를 받는 삶, 결국 그 끝엔 물을 아낀다고 오물을 내리지 않고 냄새나는 집에서 견디며 사는 삶. 과거를 반성하고 거기서 이어진 현재를 수정하는 것은 그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화를 내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잘못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시작하면 그도 나처럼 틀어박혀야 할 것이다. 암굴 같은 곳에라도 틀어박혀 참으로 단순하게…… 이제 와 모든 걸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그처럼 나이를 먹어버린 사람에겐 너무 가혹한 일이다[16]

 

아버지의 삶은 소설 속 집의 묘사처럼 더럽고 추하게 보인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또한 자신의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그는 다른 사람을 덜 이해하고 또한 자기 자신을 덜 이해해야 했다. 그가 삶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타인에게서 스스로를 격리하고 먼저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나, 그것은 너무 잔인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후회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사고로 죽은 목공소 직원 혜지 아저씨에게 했던 말이다. 사고가 나 죽어가는 혜지 아저씨가 어떤 말을 하려고 할 때, 아버지는 그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화를 내고, 혜지 아저씨는 그대로 의식불명이 되어 죽고 만다. 그의 유언이 있었는지 묻던 혜지 아저씨의 부인에게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가 그 일을 후회하는 것은, 그런 행동을 했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것인데 일이 그렇게 되고 만 것이다. 아버지는 이 일을 후회하지만 자신이 그 때에 이렇게 했다면, 이라는 생각까지는 닿지 못한다. 사실을 그럴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인정하지 않고 다시 생각해야 할 가혹한 일이기에.

 

이런 아버지의 반대쪽에는, 연인 디디를 잃고 방에 틀어박힌 도도가 있다. 버스에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디디 대신 가방을 끌어안은 도도. 그는 사고가 났을 때에 자신이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었다면, 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경우에서 더 나아가, 도도는 버스 정류장에서 쓰러진 노인을 그냥 두고 갔던 일을 생각하고, 디디 대신 남은 자신의 일상가방 속 영화표, 껌 따위를 보며 고뇌한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살았나, 어떻게 사는가, 살아서 그것을 생각[17]한다.

 

이 소설은 단순히 관습적인 무관심 혹은 폭력으로 상실을 겪는 이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도 그들이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를 묻는 소설인 것이다. 그렇기에 도도는 소설의 처음과 끝에서 생각하고, 또한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도도가 거기서 나가 다시 사회로 돌아가려면, 먼저 자신을 이해하며 자신이 한 행동들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잃은 자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기억하여 살려내야 하고, 또한 산 자들을 다시 하나하나의 개인으로,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어야 한다. 이는 어려운 일이다.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 가운데, 도도는 어떻게 방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음악이 다시 시작되었다 : 「웃는 남자」(2016)

d(도도에서 바뀐 이름)가 바깥으로 나오는 데 성공했다. 동 제목의 작품에서 이어지는 이 소설은, d가 스스로 차가워졌음을 느끼고 사물에서 디디의 흔적을 읽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디디를 기억해내는 동안, 동시에 d는 이웃인 김귀자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노인, 양귀비 잎을 달여 다른 노인들과 나눠 마시며 아직도 행상의 확성기 소리에 사이렌 소리를 연상하는 노인. 하지만 김귀자 노인은 호스피스 병원에 가 이제 합법적으로 모르핀을 맞게 되었다, 라고 d는 알게 되고 스스로 방에서 나온다. 끊임없이 과거를 생각하며 마약으로 현재를 잊는 것은 옳지 않음을 알았기에, 혹은 어쨌든 과거를 안고 살아간 다른 사람을 마주하였기에. d는 잡음으로 가득한 세계로 돌아간 것이다.

 

d는 고시원에 들어가 시끌벅적한 타인들, 방 번호가 이름이 되는 이들의 세계로 들어가 다시 타자를 마주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세운상가에서 택배업무를 맡아 다시 노동을 시작한다. 그는 혼자 지냈고 누구와도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18].

그런 그에게 여소녀가 나 알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세운상가는 고시원처럼 각 호실로 구분되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각자가 이름과 역할을 가지고 살아가는 곳이다.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바뀔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지만, 아직은 그 고유함을 유지하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세운상가이다. 이곳의 로젠’ d는 여소녀와 교류를 맺고, 그에게 음악을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턴테이블은 흠집들(상처, 혹은 그저 흠집)을 읽어내고 그것을 음악으로 바꾼다. 그것은 거리와 세계의 소음, 혹은 고시원과 마음속의 소음과는 다르다. dLP를 듣기 위해 먼저 dd의 짐을 찾으러 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ddd와의 기억을 다시 살려내고, 그것을 소음이 아닌 음악으로 만들며 dd를 고유한 한 사람으로 복구시킨다. 이 윤리적이고 숭고한 장면은 동시에, 고시원의 15호와 16호를 각각의 사람으로 다시 만들기도 한다. 고유한 개개인을 받아들이는 것, 잃은 이를 고유하게 기억하고 산 자를 고유한 이로 받아들이는 것. d는 비로소 올바른 이해의 영역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렇기에 음악은 다시시작된다고 서술된다.

 

이후의 소설 전개는 복잡하게 전개된다. 먼저 윤선오 노인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이어 d와 여소녀의 이야기가, 그리고 박조배의 이야기가 연달아 이어진다. 먼저 윤선오 노인의 경우는 자신의 고유한 위치를 찾지 못한 인물이자 가면을 쓴 인물이기에, 그의 행위의미없는 물건을 훔치는 것은 고발이자 복수가 된다. 그러나 이는 자기 자신을 고발하는 동시에,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상인들에 대한 복수인 것이다. 그는 같은 상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죽은 뒤에는 거기 있지 않았다고 부정당하는 사람이니까. 그의 비밀이 결말 직전에서 해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편으로, 여소녀와 대화를 나누며 d는 이전보다 발전한 인식을 보여준다.

 

내가 현재나 과거를 생각할 때, 그것은 매번 죽음이고, 죽음을 경계로 이 세계와 저 세계로 나뉘는 것이 아니고 죽음엔 죽음뿐이며, 모든 죽음은 오로지 두개로 나눌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격되거나 목격되지 못하거나, 그렇지 않나요?”[19]

 

d는 이제 상실과 거기에서 정지되어버린 사람, 그리고 역시 정지된 그 공간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ddd와 유년기에 겪었던 일을 재구성해서 떠올리고[20], 이웅평 사건의 기억을 떠올려내며 그것을 여소녀에게 설명한다. d는 음악이 흐르는 전투기를 타고 경계를 넘어 날아갈 수 없다.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d, 그렇기에 정지된 것들을 기억해낸다. 방법은 그것뿐인 것이다.

 

d는 친구 박조배에게 dd가 빌렸던 책을 돌려주기 위해 가고, 그와 광화문을 걷다 차벽에 막혀 종로를 떠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공동체의 1번지를 막는 차벽은 혁명이다. 그것은 혁명이 기능하지 못하도록 하는 혁명이고, 흐름소통을 막는 혁명이다. 소설 속 세월호의 이야기와 우리가 가진 공통의 기억을 떠올리자면 차벽 혁명은 동시에 상실된 이에 대한 기억을 거부하는 혁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차벽이 막는 혁명, 2010년에 디디가 꿈꿨고 6년을 걸쳐 다시 쓰인 혁명은 무엇일까.

 

d는 이제 우리가 너무 하찮아서, 충돌 한번에 내동댕이쳐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은 왜 오지 않았나. d는 이미 잃어버린 사람들을 기억하고, 언제든 잃을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이 고유함을 안다. 깨지기 쉬운, 빛을 내서 마치 전구처럼 보이는 진공관은 흠집을 음악으로, 각자의 고유한 음악으로 바꾼다. 진공관은 각자가 고유하고, 동시에 다른 고유한 것들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뜨겁다얇지만 고유한 생명력을 가지고, 스스로를 진공으로 비우면서도(이것은 「웃는 남자」(2014)를 떠올리기도 한다) 열을 가지고 살아있다’. 흐름을 막고 혁명을 막는 차벽 혁명에 맞서, 스스로를 비우고 고유하며 서로 고유함을 아는 이 연약한 유리관이, 혁명을 일으킨다. 그렇기에 우습게 볼 수 없는, “조심을 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디디가 우산을 챙기며 시작한 이해의 혁명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후일담 :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2017~)

혁명이 일어났다. 사람들의 죽음을 방치하고 옳지 못한 행동을 한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과연 누구도 죽지 않는 소설을 쓸 수 있고 누구도 상처받지 않아 마치 죽음처럼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앞서 제시된 이해의 신화는, 황정은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극도로 이례적인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21]에서 다시 검토된다. 서사가 과잉된 이 소설에서, 작가는 여성의 문제, 장애인의 문제, 성소수자의 문제, 그리고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한번에 풀어낸다. 동시에 이 소설은 앞선 소설의 광화문 촛불 시위에서부터 탄핵 가결까지를 의도적으로 생략한 채 탄핵이 가결된 직후의 회상만을 다루고, 그러면서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끊임없이 끌고 온다. 이 소설은 불편한 소설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받을 필요가 없는이들을 이해하려고 할 때, 그것은 편안한 일은 아니다.

본 글은 「웃는 남자」 연작의 흐름을 다루기에 이 소설에 대해서는 자세히 분석하지 않겠다. 정확히 말하면 엄청난 정보의 밀도 탓에 다루기가 어려운 탓이 더 크지만. 여기서는 소설 속의 중요한 일화, ‘묵자점자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당연히 점자가 무엇인지는 대다수가 알겠지만, 묵자가 무엇인가. 묵자는 시각장애인이 아닌 이들이 읽는 글자이다. 그러나까 우리가 보고 있는 글자는 대부분 묵자인 셈인데, 사람들은 묵자가 무엇인지 모른다.

 

사람들은 그런 걸 상상할 정도로 남을 열심히 생각하지는 않아.

그것을 알/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22]

 

이런 세계를 묵자의 세계라고 한다면, 묵자의 세계에서 맹인은 이해받지 못한다. 이해할 필요가 없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고유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KTX가 들어올 때 소리로 된 알림은 나오지만, 그것이 어디 역에 가는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보면되니까. 이런 세계에서 화자인 서수경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연인과 함께 눈총을 받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언과 무시 혹은 폭력 속에서 자랐으며, 그렇기에 아무도 죽지 않는소설을 써낼 수가 없다. 아무도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서수경은 그에 근접한 세상을 위해 나아간다. 촛불이 혁명처럼 세상을 바꾸는 와중에, 광화문에서 악녀 OUT’이라는 팻말을 마주하는 삶은 누군가에겐 고통스러울테니까. 수경은 모두가 잠든 와중에 먼저 일어나 방을 치우고 아무도 말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 대해 생각한다. 모두가 잠든 가운데 우산은 충분한지 확인하던 디디의 마음은, 내용상으로는 전혀 유기적인 연관조차 없는 7년 뒤에 소설에서 변주된다세상에 확실하게 뿌리내리고, 우화를 벗어나 현실을 마주하고 말이다.


덧붙임 : d」의 개작이 가지는 의미(2019)

「웃는 남자」(2016)는 『디디의 우산』 단행본을 준비하면서 작가에 의해 개작되어 「d」라는 제목으로 책에 실렸다. 내용의 큰 변경은 없지만 자잘한 변경점이 소설 내에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도 단순한 수정으로 볼 수 없을 세 가지를 여기에 적고 그 의미까지 풀어내고자 한다.

 

하나. 소설의 도입부에서, 이전에 없던 (단행본 기준)3쪽정도의 분량이 추가되었다. 「디디의 우산」의 1장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삽입하고, “많은 밤을 보낸 뒤에 d는 차가워졌다그리고 그 순간이 왔다로 수정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ddd에게 있어 신성한 것이 되었다의 앞에 ddd에게 우산을 받으며 다시 만나는 장면(동창회 장면)3쪽가량 추가 삽입하였다. 이는 앞서 언급하였듯 ddd를 기억해내는 것의 의미를 강화하고, ddd와의 흐릿한 기억을 복원해내는 과정을 강조하여 윤리적인 기억하기의 문제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물론 한편으로는 이전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맥락을 더 정확히 전달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 소설의 중반부에서, d가 고시원에서 LP를 트는 장면 중 음악이 다시 시작되었다이후의 한 문단이 없어졌다. 물론 소설의 짜임새를 생각할 때 그 이후의 문단고시원에서 항의를 받았으리라 추측되는 부분은 없어도 좋은 것이겠지만, 그보다도 작가가 음악이 다시 시작되었다라는 문장에 큰 의미를 담았을리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저 장면을 통해 ddd와의 기억흠집을 음악으로 재현해내고, 동시에 고시원의 사람들이 정말 사람이 되는 아이러니한 장면이기에. 그렇게 사람들의 사회로 다시 돌아간 것이기에, 음악은 다시시작된 것이다.

 

. 소설의 종반부가 자잘하게 수정되었다.[23]나의 사랑하는 사람은 왜 함께 오지 않았나이후 한 줄이 삭제된 것은 짜임새 때문으로 보이고, “음악이 이어졌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 부분이 눅눅한 바람으로 정리된 것은 음악이 재생되고 있음을 재차 강조하기보다 장면에 집중하도록 안배한 것으로 보였다. 다만 특이한 점은 연인이라는 단어가 모두 애인 愛人으로 수정되고 한문까지 병기되었다는 점이다. 필자가 추측하기엔 연인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확장되는,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 : 소외된 이들에게 우산을

황정은은 환상적이고 언어유희적인 작품 속에서 경제적인 소외라는 문제에 깊게 천착한 작가이다. 그러나 작가의 2010년 전후의 현실적인 세계관으로의 변화, 2014년 전후에 소외와 상실의 문제로 확장되는 소설세계, 그리고 완전히 과잉되고 절박해진 현재의 작품까지. 일반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와 끈질김을 가진 작가를 마주하여, 필자의 부족한 역량으로 돌아돌아 결론까지 왔다.

 

주로 이해의 문제를 가지고 소설을 읽었다. 소외된 이는 이해받을 수 없고, 이해받을 필요가 없기에 다른 이들과 괴리를 가진다. 그들이 어떻게 서로를 고유한 존재로 이해하는가. 그 윤리적인 작업은 어떻게 혁명처럼 일어나고, 세상을 바꾸고 또한 바꿔나갈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데에 황정은 작가가 들인 10여년의 시간을 읽었다. 작가는 이제 환상을 가져오지 못한다. 현실에 완전히 뿌리내리고, 묵자의 세계를 부수며 어딘가에 있을 ddd의 삶을 염려한다.

 

턴테이블은 빈티지라고 불린다. 빈티지는 오래되어 가치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어떤 사람들은 빈티지 속의 고유함을 찾아 세운상가에 온다. 『백의 그림자』에서 세운상가의 재생을 두고, 그곳에서 일하는 무재는 말한다.

 

언제고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24]

 

소외된 이들을 언어적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부르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거기에서 생을 이어가는 이들 각자의 고유함을 인정하는 것은 힘든 일이고 공이 많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것을 행할 때, 그것은 혁명이 된다. 마지막의 『백의 그림자』의 대화 하나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씨를요/ …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25]

 


[1] 황정은. 『디디의 우산』. 창비, 2019.

[2] [[창작과비평]] 2016년 겨울호 게재, 이후 제목 「d」로 수정되어 『디디의 우산』 수록

[3] [[문학3]] 문학웹 2017 10 ~ 12월 연재

[4] 한국문학 2010년 여름호 게재, 이후 『파씨의 입문』, 창비, 2012. 에 수록

[5] 문학과사회 2014년 가을호 게재, 이후 『아무도 아닌』, 문학동네, 2016. 에 수록

[6] 창작과비평 2016년 겨울호 게재, 이후 제목 「d」로 수정되어 『디디의 우산』 수록.

[7] 황정은. 『일곱시 삽십이분 코끼리열차』. 문학동네, 2008.

[8] 황정은. 『파씨의 입문』, 창비, 2012.

[9] 황정은. 『백의 그림자』, 민음사, 2010

[10] 「양산 펴기」의 경우, 가난 때문에 연인과 갈등을 빚은 어느 수리공이 하루동안 바자회에서 양산을 파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자회 옆에서 열린 노조 시위와 구청장의 순회를 관찰하고 또한 그들의 확성기 소리와 바자회의 양산,속옷을 파는 소리가 섞이며 우스꽝스럽고 조금은 환상적인 광경을 만들지만, 이와 별도로 주인공은 철저히 자신의 현실에 묶여 있으며 우산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팔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인물이다(그렇기에 소설은 잠꼬대로 우산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 가난이나 연인의 문제는 「디디의 우산」과도 엮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같은 시기 다른 소설들보다 현실적인 모습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분석의 가치가 있을 소설이다.

[11] 「디디의 우산」 175쪽 인용.

[12] 「디디의 우산」(2010) 178쪽 인용.

[13] 황정은. 『야만적인 앨리스씨』, 문학동네, 2013. 여장 노숙자 앨리시어는 가정 폭력과 가난 때문에 고통스러운 성장기를 보낸다. 그는 그에 맞서 싸울 수 없고, 일종의 도피여장 노숙자라는 기묘한 형태로 삶을 이어간다. 모호한 묘사 속에서도 강렬한 욕설과 폭력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14]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2014. ‘나나’,’나기’,’소라라는 이름의 주인공들을 등장시킨 이 소설은, 각자의 서술을 통해 가난의 문제, 여성임신의 문제, 동성애의 문제를 한 소설에 묶어낸다. 소설은 동시에 이들을 통한 유대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고 필자는 읽어냈다.

[15] 2013년 발표, 이후 『아무도 아닌』, 문학동네, 2016. 에 수록

[16] 「웃는 남자」(2014) 169쪽 인용.

[17] 「웃는 남자」(2014) 184쪽 인용.

[18] 「웃는 남자」(2016) 228쪽 인용.

[19] 「웃는 남자」(2016) 266

[20] 이러한 묘사는 2019년 단행본 발매와 함께 추가되었다. 2016년 발표시에는 일부의 묘사가 있을 뿐이다.

[21] 『문학3』 문학웹 201710~12월 게재. 그러나 분량의 절반 정도를 새로 썼다고 작가가 이후 밝히고 있다. 본 글에서는 이 개작이 가지는 의미는 분석하지 않았다.

[22] 황정은. 『디디의 우산』. 창비, 2019. 263

[23] 언급되는 문장/단어들은 모두 본문 284p, 즉 마지막 페이지이다.

[24] 황정은. 『백의 그림자』, 민음사, 2010, 115쪽 인용

[25] 황정은. 『백의 그림자』, 민음사, 2010. 39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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