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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들/독서와 감상

기계 뇌와 트리말키오 : 『사물들』을 읽은 뒤의 생각들

by 카프카뮈 2021. 4. 15.

이 글은 2016년에 작성했던 에세이를 살짝 다듬은 것이다.

글을 썼던 당시에는 알파고 이슈가 한창 화제였던 터라,

하도 주변에서 알파고 알파고 해서 심통이 많이 났던 모양이다.

당시에는 꽤나 만족하며 썼던 글인데, 5년이 지나서 보니 주장마다 영 근거가 없어 기분이 마땅찮다. 그래도 그땐 그런 생각을 했구나 싶어 주석만 추가해서 옮겨본다.

인용된 책은 조르주 페렉, 사물들』, 김명숙, 펭귄클래식코리아(2011) 이다.


기계 뇌와 트리말키오

- 소설 사물들에서 예측된 현대 소비사회에 대하여, 빅 데이터를 중심으로

 

본문에 앞서 - 인공지능은 ( )를 꿈꾸는가?

인간들은 바로 오늘 알파고에게

인간을 도둑맞았다

컴퓨터는 영웅이 되고

인간은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었다 [각주:1]

모두가 알파고를 이야기한다. 5번의 대국이 있었고, 그 탓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급작스레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에서와 같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앞다투어 발표하고 있다. 언론들은 빅 데이터 기술의 발전이 전체 직업의 절반 이상을 흡수한다는 과격한 보도를 늘어놓고, 이러한 논쟁은 이제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찬반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본격적인 소설의 분석과 논의에 앞서, 이러한 논쟁들에 대해 간단한 반박을 하고, 나아가 이러한 빅 데이터 기술이 왜 현재에 와서 발전하였으며 또 주목받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 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위의 담론을 바탕으로 현대 소비사회의 성격을 되돌아보면서, 소설 사물들이 이러한 변화에 대해 어떻게 예측하고 인지하였는지, 그리고 그때에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를 향하여 우리의 시선을 이끌어 나갈 것이다.

 

이제 필자는, 물론 머신러닝에 대해서는 학부생 수준의 지식과 관심뿐이지만, 그 수준에서도 충분히 반박이 가능할 두 가지 논제를 먼저 이야기하려 한다. 하나는 두려움, 인공지능이 각성하여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는 광신적인 두려움에 대한 것이다. 다른 하나 역시 두려움에 대한 것이지만, 이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라질 직업과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러다이트적 두려움[각주:2]이다. 이제 논의를 시작해보자.


논의 : 두려움에 대하여

요즈음에 사람들이 빅 데이터 혹은 머신러닝에 대해 가지는 두려움은 마치 광신적으로까지 보여지는 두려움이다. 위의 최동호 시인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인간이 로봇의 노예가 된 시대[각주:3]라는 것이 이들이 가지는 시대에 대한 담론이다. 그러나 두 시대를 예리하게 나누는 절단면, 그 분기점으로 그들이 제시하는 것은 그저 온전히 인간의 영역이었던 바둑이라는 게임에서 컴퓨터가 압도적 승리를 거둔 며칠뿐이다.

 

기술적인 영역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필자는 먼저 바둑이 언급한 것처럼 온전한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바둑은 단지 경우의 수가 지나치게 큰게임일 뿐이며, 그렇기에 이미 20년 전에 인간을 압도적으로 이긴 체스보다 더 높은 기술 발전을 요했을 뿐이다.

알파고의 승리보다 정확히 20년 앞서 세계를 두려움에 빠뜨린 체스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 컴퓨터 딥 블루[각주:4]의 대국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 때 컴퓨터의 성능이 그것을 충족할 정도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이론들[각주:5]은 이미 컴퓨터가 발명되던 시기부터 설계되어 있었고, 다만 그것을 구현할 만큼 기계적 성능이 좋지 않았을 뿐이다. 이는 비유하자면, 이미 19세기 말에 발명되었던 전기 자동차가 근래에 와서야 기술의 발전으로 상업적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개선된 것과 유사한 것이다.[각주:6]

특히 바둑 인공지능에 사용되는 빅 데이터 이론은, 이미 1960년대에 논문이 발표되었던 이론들이다. 이때 설계된 빅 데이터 이론은, 인간의 뇌 구조를 모티브로 1) 수많은 정보를 입력하고, 2) 특정한 기준을 세우고, 3)그 기준을 바탕으로 정보를 구성하여 결론을 낸다 라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각주:7]

단지 당시에는 대형의 정보를 입력하고 처리할 하드웨어적인 기술이 부족하였고, 또한 그러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에 들어 재발견된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인류를 뛰어넘은 인공지능이 마치 몇 개월 전에 처음으로 생겨났다거나, 혹은 오늘날을 기점으로 인류를 지배하리라고 생각하는 허황된 논리는 어느 정도는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 우리에게는 가능성에 대한 논증이 남아있다.


논의 : 그 원리와 필요에 대하여

단언하자면, 빅 데이터 기술을 단순한 연산 기계의 작동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최근의 빅 데이터 기술은 위에서 말했듯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입력받고 일정한 기준을 바탕으로 하나의 결론을 내는 방식인데, 이는 실제 인간이 뇌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각주:8] 단순히 이것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상황에 따라서는 인간만의 영역, 그러니까 창작혹은 창조라고 불리는 영역 역시 컴퓨터가 차지할 것이라는 두려움 역시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위의 광신적 두려움의 바탕이자 동시에 러다이트적 두려움의 기틀이다.

 

그러나 필자는 감히, 이러한 창조의 영역은 아직 인간의 몫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앞서 말하였듯이 빅 데이터는 온전히 인간의 기준’, 그리고 선별에 의해 구동되기 때문이다. 빅 데이터에 입력되는 데이터(알파고를 예로 들자면 3천만개의 바둑 기보)는 인간이 고르는 데이터이며,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같은 예를 들자면 바둑에서의 승리 조건) 역시 인간이 정하기 때문에, 빅 데이터는 결국 그 안에서 하나의 결론(즉 바둑에서 승리하기 위한 모범적인 방법들)을 도출할 뿐이다. 만일 세계의 모든 소설을 컴퓨터에 삽입한 후 가상의 기준이를테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규칙을 설정한다면 컴퓨터는 그럴듯한 베스트셀러(혹은 그것을 흉내낸 의미없는 텍스트 덩어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컴퓨터가 온전히 소설을 써낸다는 것은 현재의 기술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며, 쉽사리 이야기할 수 없는 일이다.

 

러다이트적 두려움이라고 내가 두 번째 논제를 이름붙인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한다. 영국에서 증기기관을 부순 노동자들은 증기기관이 인간의 모든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증기기관은 일정한 설정 하에 반복적인 노동만이 가능하며(이는 빅 데이터가 소설을 쓰거나 인류를 지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그것을 설정하고 조종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점을 그들은 간과한 것이다.


그래서 왜 지금인가?

우리는 앞서의 논의와 그들이 느끼는 공포에서, SF 장르문학의 대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유머러스하게 던진 한 문장을 떠올릴 수 있다. “충분히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위의 논증을 통해, 빅 데이터는 온전히 인간의 통제 하에 있는 마법이며, 명확한 기준과 선별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숙지하였다.

 

그리고 위의 요점들이, 현대에 들어 자본주의가 빅 데이터에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는 앞서의 긴 이야기를 통해서, 빅 데이터 기술이 위험하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증명하고 동시에 이 기술의 요점이 선별된 정보를 분석한다는 것임을 언급하였다. 이것은 사물들의 주인공 제롬과 실비가 돌리던 설문지의 현대화된 형태이고, 동시에 현대 소비사회를 이끌어가는(혹은 이끌어 갈) 중추이다. 어째서일까?

 

빅 데이터 기술은,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발달하고 있는 새로운 매체들디지털 신문, SNS, 더 발전한 방송 매체들은 제품의 수요 분석과 촉진에 최적화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빅 데이터 기술을 통해 기업들은 기존의 번거로운 설문지나 불확실한 기획들 없이도 소비자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 각 소비자들이 가지는 성향을 분석하여 적절한 수요를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발달한 매체들은 이것을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고, 동시에 소비자들이 매체에 흘리는 정보들을 선별하여 빅 데이터에 공급할 수 있기도 하다. 이것이 빅 데이터가 현대에 들어 발전하고 있는 이유이고, 또한 소비사회의 최전선에 나타난 이유이다.

 

이제, 기술적인 이야기를 마치고 소설이 소비 사회에 대해 분석한 것을 바탕으로 접점을 찾아보자.


사물들 속 예측들

조르주 페렉이 사물들을 쓴 60년대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가 점차 드러나던 때이다.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산업혁명 시기, 그 때에 처음으로 일구어낸 제품의 고속 생산과 유통은 자국 내의 수요-공급의 역전과 그로 인한 제품 가격의 폭락으로 위기를 맞는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유럽 열강들은 식민지라는 새 시장을 찾고, 그곳에 생산지까지 구축하여 이른바 제국주의 시대를 열게 된다.[각주:9]

 

그러나 이러한 체제는 19~20세기에 들면서 식민지 시장까지 수요의 한계를 보였다는 점, 그리고 2차례의 세계대전과 민족자결주의로 대표되는 권력구도의 변화로 인해 과거의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혼란기에 접어든 20세기 초중반, 이제 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새로운 틀을 짜야 할 책임을 떠안는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체제는 소비문화라는 새로운 수요-공급의 틀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노동 구조의 개편과 경제 호황을 바탕으로 구매자들이 어느 정도의 재력과 수요를 갖추자, 생산자들은 상품을 지속적으로 갱신하면서 유행을 선도하고, 나아가 유명인과 언론 등을 이용한 초기적인 마케팅을 시작한다. 1920년대의 초기 소비문화를 주 소재로 사용한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안경이 그려진 커다란 안과 간판[각주:10] 정도로 표현되었던 광고라는 개념은, 사물들의 시대에 다다랐을 때에는 이미 엑스프레스에서 나타나는 본격적인 마케팅의 형태로, 그리고 동시에 체계적인 유행의 탄생으로 진화한다. 이 시기는 말하자면 과도기적인 형태였다고 할 수 있는데, 언급하였듯 이전의 신문과 비행선과 간판만에 의지하는광고의 형태는 벗어났으나 아직 우편과 전화 등의 미비, 그리고 관련된 연구의 부족으로 본격적인 소비문화와 마케팅의 촉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직 정보가 그 가치를 평가받지 못했음을 의미하고, 그러한 면에서 설문 조사라는 새로운 사업(이자 소비사회의 핵심이 될 새로운 기술)이 소설 내에서 비중있게 등장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인 것이다. 당장 소설 속에서 주인공 실비와 제롬은 제품의 개량을 위한 설문 조사를 직업으로 가졌다고 묘사되는데, 이것은 위에 언급된 소비 사회의 가능성, 60년대를 분기로 더욱 발전하는 정보의 가치에 대한 양상을 페렉이 인물 구성 단계에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묘사들 역시 흥미롭다. 페렉은 주인공들을 묘사할 때 중산층과 빈민층의 사이쯤으로 서술하면서, 이전까지 일부만의 문화였던 소비 문화가 이때를 기점으로 빈민층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소설 속에서 소비 문화는 그들의 생활에 밀착하였고 삶을 이끌어가는 새 원칙이 되었다는 사실 역시 지속적으로 묘사되는데, 페렉은 이 새로운 삶에 대해 가치관이 바뀌고 변해 버리는’(38p)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소설 내에서 시범적으로 가능성이 제시되는 소비의 개인화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다. 결국은 생산자의 공산품을 사는 것이지만, 그들이 만든 개성이라는 환상과 디테일한 차이를 통해, 각 개인에게 세분화되고 적절한 제품을 판다는 것은 당시엔 큰 충격이었다. 이러한 소비의 개인화는 고도의 생산 기술과 유통 기술의 발전을 통해 당시부터 현실화되고 있었고, 현대에 들어서는 빅 데이터를 통한 각 개인의 취향/수요 파악과 발전한 매체 기술을 활용한 유행의 다각화를 통해 의미 그대로 생활밀착의 형태를 띄게 된다. 앞서의 기류에 대해 소설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린 광고라는 비난의 시선을 보내면서도 동시에 모든 것을 일순 바꿔버리는 사소한 디테일들, 비싸지 않으면서 사람을 진정 유쾌하게 만드는 소소한 것(44p)이라고 정확히 맥락을 짚어내고 있다.

 

이렇듯 트렌드를 분석하는 수많은 예측들이 가득함에도 이 글이 사회학 칼럼이 아닌 소설인 것은, 발전하는 소비사회 속에서 사람이 겪는 상황들을, 그리고 그 안에 미세하게 스치는 감정들을 포착하였고 또한 세밀하게 묘사하였기 때문이다.

이미 소비가 사회를 위한 동력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제롬과 실비는 가치관이 바뀌고 변해 버렸으며’ ‘생각이란 걸 하지 않고 사는상황에 처하게 되고, 이들은 결국엔 환상에 빠지고 도둑질을 상상하기도 했다라고 할 정도까지 정신적으로 몰리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현대 사회의 주요 문제이자 소비 사회가 가질 수밖에 없는 결점에 대한 통렬한 지적이다. 작가는 2장을 통해 이러한 소비 사회에서의 탈출을 보여주지만, 그들의 혁명적 탈출 대신 그들이 새로운 터전에서 느끼는 상실감을, 그들이 그 속에서 낯선 사람, 이방인임을 자각하고 무기력에 빠지며 종래에는 다시 소비의 세계로 귀환하게 되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다. 이런 냉혹한 현실인식의 연장으로, 소설의 수미상관 구조 하에 써진 마지막 가정문의 나열은 소비사회를 온전히 인식하고 그것이 필연적임을, ‘우리는 행복하기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는 묘사이기도 하다.


글을 맺으며

사물들이 현대에도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또 공감을 사는 것은, 첫째로 현대 사회가 어떠한 형태로 발전할지에 대해 예리한 식견으로 예측해냈고, 둘째로는 그 과정에서 해결되지 않고 있는 소비 사회의 문제점들을 지적하였으며,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불가피성을 날카롭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의 예측이 얼마나 현대에 와서 잘 맞아떨어지는지에 대해 앞서 난삽했던 빅데이터-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를 통해 약간이나마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인상 깊게 읽은 독자라면, 이러한 증명을 제하고도 충분히 현대 소비사회를 이 소설에 견주어가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또한 그렇게 읽었을 것이다)

 

대화조차 배제된 묘사의 나열이었지만, 차라리 스펙으로 나열된 전자제품 진열장같은 이 소설책이 나는 낯설지 않았다. 알면서도 몰랐던 현실에 대한 아지랑이같은 인식들이, 짧은 정독의 시간을 통해 윤곽을 잡아감을 느낀다.

 

  1. 알파고와 신의 분노, 최동호, 2016년 발표. 관련기사 링크 :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42 [본문으로]
  2. 1811-1812년 영국에서 있었던 사회 운동. 근대적인 노동 운동으로 평가할 수도 있지만, 필자는 본 글에서 기계 파괴를 비롯한 기술에 대한 두려움에 그 이름을 빌려 쓰려고 한다. [본문으로]
  3. 로봇과 빅 데이터가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은 비극적인 무지의 단면이기도 하다. 로봇이라는 말은 마치 기술 발전에 대한 대명사처럼 취급받고는 한다. [본문으로]
  4. 딥 블루는 IBM에서 연구용으로 1996년에 개발한 컴퓨터이다. 딥 블루는 최초로 세계 챔피언을 이긴 인공지능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5. 사실 인공지능 체스 프로그램은 단순히 모든 경우를 조사’, 즉 모든 체스 말이 움직이는 경우를 계산하는 것이므로, 아래에서 다룰 빅 데이터와 일반적 비교는 어렵다. 당시의 무지가 조금은 부끄럽다. [본문으로]
  6. 이 글을 쓰던 시절에만 해도 전기 자동차는 '개선되었다'라고 할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지금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었기에, 나는 그 변화의 폭에 놀라게 된다. [본문으로]
  7. 이 글을 쓰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의 지식 수준은 이 정도에 머물러 있다. 분명 잘못된 내용을 포함하리라 생각되는데, 이에 대한 지적을 간절히 부탁드리는 바이다. [본문으로]
  8. https://youtu.be/V1eYniJ0Rnk 본 동영상은 빅 데이터를 통해 인공지능이 게임을 배우는 과정이다. 게임을 무한히 플레이 시키면서, 일정한 기준점수를 얻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면, 컴퓨터는 점수를 얻는 상황들을 숙지하게 되고 점점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 간다. 본 영상에서는 약 2~4시간 뒤 컴퓨터가 완전히 게임의 룰을 숙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본문으로]
  9. 이 부분부터 아래의 부분까지는 나의 독자적인 해석이다. 추후 논문이라도 읽어서 보강해 봐야겠다. [본문으로]
  10. 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 펭귄클래식코리아, 김보영, 36-37p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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