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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들/독서와 감상

오뒷세이아와 일리아스의 간극

by 카프카뮈 2021. 3. 31.

이 글에서 쓰인 책은 다음과 같다.

호메로스, 『일리아스』, 천병희, 도서출판 숲(2015)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천병희, 도서출판 숲(2015)

피에르 비달나케, 『호메로스의 세계』, 이세욱, 솔(2004)


최근 대학에서 고전을 읽고 함께 논의하는 수업을 듣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고민해볼만한 여러 주제가 등장하여, 함께 토론해보고 의견을 나눴다.

오늘은 특별히 재미있던 질문 하나를 옮겨본다.

"왜 『오뒷세이아』에는 오뒷세우스의 활이 갑자기 등장하는가?"

『오뒷세이아』를 읽다 보면 구혼자들을 시험하기 위해, 페넬로페가 오뒷세우스의 활을 당겨서 능력을 보일 것을 제안한다. 그런데 특이한 부분, 『일리아스』에서는 오뒷세우스가 활을 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10권(이 부분은 후대의 가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장이기도 한다)에서 활을 챙겨가는 정도.

그런데 『오뒷세이아』에 와서는 오뒷세우스의 활이 그의 능력을 증명하는 장치가 되니, 뭔가 이상하다!

 

『일리아스』에서 활에 대한 인식은 어땠을까? 『일리아스』에서 활을 쏘는 트로이의 장수 판다로스, 그는 메넬라오스에게 화살을 쏴서 파리스와 그의 협정을 깨는 비열한 자이다. 또한 테우크로스도 있다. 텔레몬의 아들 아이아스의 방패 뒤에 숨어 활을 쏘는 인물로, 그는 아이아스의 동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후대에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는, 테우크로스는 아이아스의 친동생이 아닌 사생아라는 설정으로 바뀐다. 마지막으로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전쟁의 원흉이자 비겁한 파리스도 활이 주특기로 묘사된다.

 

『호메로스의 세계』의 저자 피에르 비달나케는 이에 대해, 활이 당시의 전투에서 영웅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고 언급한다.

그에 의하면 당시엔 당당하고 비겁하지 않은 전투에 대한 추앙이 있었고, 실제로 『일리아스』에서는 전투가 이상적으로 묘사되는 점이 지적된다. 전차를 사용하지 않고, 내려서 칼과 바위로 싸우는 점이 그 예시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일리아스』에서 뒤에 숨어 활을 쏘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비겁한, 이상적이지 못한 전투 방식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정적인 활이, 왜 『오뒷세이아』에 와서는 오뒷세우스의 상징이자 증거품이 될까?

일단 오뒷세우스라는 인물이 두 작품에서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먼저 보는것이 재미있다.

『일리아스』에서 영웅 오뒷세우스는 지혜로운 이이나, 비겁하지는 않기에 활을 쏘지 않는다. 그러나 『오뒷세이아』에서 오뒷세우스의 성격은 대폭 변화하며, 그는 끝없이 속임수를 늘어놓고 끝까지 살아남는, 믿을 수 없는 화자이자 약삭빠른 주인공이 된다.

여기서 주장을 확장하자면, 『일리아스』 속 아킬레우스와 같은 영웅관을 뒤로 하고 『오뒷세이아』에서는 오뒷세우스가 새로운 영웅형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닐지. 그래서 약삭빠르고 부정적 성격을 가지는 '활잡이'는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화하고, 그것이 오뒷세우스에서 부여된 것이 아닐지.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주장에 대해 논의해보자, 교수님께 추가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일리아스』 뿐 아니라, 이후 전해지는 헤라클레스의 신화에서도 활에 대한 이슈가 존재한다.
활은 용맹하지 않고 비겁한 무기라는 지적은 작품에 등장하지만,
바로 다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효율적인 무기야말로 용맹한 것이라는 반박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분명 당대 전쟁사에서 활의 사용은 다양한 갑론을박을 낳았을 것이며,
이 흔적이 『일리아스』『오뒷세이아』에서도 나타났을 수 있다.

다만 이 내용만 가지고, 『일리아스』와 오뒷세우스 사이에서 영웅관이 바뀌었다는 것을 바로 증명할 수는 없었다.

이때, 시의적절하게 아킬레우스의 태도 변화에 대한 힌트를 작품에서 찾았다.

저번 포스팅에서도 아킬레우스의 불멸 지향을 이야기했는데, 이제 같이 읽어보자.

 

이 구문은 『일리아스』 9권 410-415행, 272p에 나오는 아킬레우스의 대사이다.

"나의 어머니 은족의 여신 테티스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상반된 죽음의 운명이 나를 죽음의 종말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셨소. 내가 이곳에 머물고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포위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힐 것이나 내 명성은

불멸할 것이오. (...)"

그리고 이 구문은, 『오뒷세이아』 11권 488-491행, 286p에 나오는 아킬레우스의 대사이다.

"죽음에 대해 내게 그럴싸하게 말하지 마시오, 영광스러운

오뒷세우스여! 세상을 떠난 모든 사자들을 다스리느니

나는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뱅이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소이다."

아킬레우스의 태도 변화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제 호메로스는,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불멸의 영광보다 낫다고 증언하는 것일까?


결론 : 시대는 영웅을 원한다

앞서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일리아스』『오뒷세이아』 사이에서 영웅성의 면모가 변경되고,

그 증거 중 하나로 활이 사용된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었다.

이는 상황에 따라서는 『일리아스』 『오뒷세이아』가 다른 작가의 작품이라는 증거로 활용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피와 절규가, 죽음에 대한 체념과 암울한 운명이 지배하는 『일리아스』 속 세계는 영웅을 필요로 한다.

그 영웅은 불멸을 위해 자신을 내다버리며, 운명에 대항하지 않고 운명에 순응하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아킬레우스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강인한 순응자리라. 그는 실제로 불멸자로 남을 것이니.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오뒷세이아』가 시작될 때, 이제 시대는 새로운 영웅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영웅은 이제 평화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이전의 서사를 마무리해야한다.

그리고 그 영웅은 운명을 끝없이 거스르며, 칼륍소와 나우시카, 로터스와 사이렌의 유혹 역시 거스른다.

결과적으로 나는 누구인지,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끝없이 고민하는 최초의 개인.

동시에 진정한 여행자이자 타자를 통해 자신을 끝없이 찾아나가는 "No—man"

그것이 오뒷세우스인 것이다.


영웅이 죽은 시대라지만, 우리 시대는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그보다도,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부족한 글은 여기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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