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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들/궁금했던 것들

선험적 지식과 언어 발달

by 카프카뮈 2021. 7. 26.

이 글은 국어 의미론을 공부하면서 겸사겸사 작성한 글이다.

선험적 지식에 대한 기초적인 수준의 지식을 정리하고, 그냥 내 생각을 조금 덧붙였다.

사족임을 알면서도, 때로는 이렇게 글이 늘어지곤 한다.


행성 생명체의 기억 유전 등급은 얼마나 되지?”

기억 유전은 없습니다. 모든 기억은 후천적으로 얻어집니다.”

(…)

이런 방식의 정보 전달은 속도가 얼마나 되나?”

“초당 1~10비트입니다.”

(…)

자네 말은 기억 유전도 하지 않고 서로 음파로 정보를 주고받는 데다,

초당 1~10비트의 믿을 없이 느린 속도로 교류하는 종족이

5B 문명을 건설하는 가능하다는 건가?”[1]

 

중국의 sf 작가 류츠신은 짤막한 단편 「산골 마을 선생님」에서, 외계인의 눈으로 지구인의 불가사의함을 논한다. 기억이 유전되고 생각을 바로 시각화하는 능력이 있는 외계인들에게, 지구인의 발전은 이해할 없는 일이다. 모든 지구인은 어떤 기억도 없이 태어나고, 초당 바이트의 정보를 전달받을 뿐인데, 어떻게 그들이 도시를 만들고 우주의 원리를 배운다는 말인가? 인류를 멸망시키려던 외계인들은, 시골 소년들조차 물리 역학의 기본 원리를 아는 모습을 보고 자신들의 생각을 단념한다. 문명을 관찰해야겠다면서.

그런데, 여기에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인류를 비롯한 모든 지구의 생물은 기억을 유전할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은 다른 인간과 언어를 통해 소통할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인간은, 지금의 문명을 만들 있었을까?


선험적 지식

선험적 지식innate knowledge 어떤 외부의 학습 이전부터 생물에게 내제된 지식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과 그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 먼저 선험적 지식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고, 추가로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서로 다른 여러 분야에 작용할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또한 이러한 선험적 지식은 뇌의 크기 등에 영향을 받는지, 어떤 조건이 성립해야 생기는지에 대한 논의 역시 존재한다.

 

이러한 여러 논쟁들을 정리하기 위해, 먼저 마리의 새를 생각해 보자.[2] 새는 태어난 새끼이며 자신을 잡아먹을 있는 맹금류에 대한 교육이나 경험을 부모에게 전달받지 못했다. 그러나 맹금류와 비슷한 이미지를 제공했을 , 새는 본능적으로 움츠러들고 안전한 곳을 찾으려 한다. 이는 학습된 것이 아니며, 특정한 이미지와 동작에 대한 시각적 인식에 연결되어 하는 행동임을 있다. 이를 통해, 우선 선험적인 지식이 동물에게 존재할 있음을 그럴듯한 가설로 생각할 있다.

 

그렇다면 어러한 선험적 지식은 어떤 분야에 작용할까? 만약 어떤 어린 강아지와 두살배기 아이가 함께 있다고 하자. 이들은 간단한 가지 단어에 반응하며, 외부를 여러 감각으로 인식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년이 지나면 이들의 성장 방향은 전혀 달라진다. 똑같이 여러 가지 언어적 자극을 받더라도, 강아지는 마찬가지로 가지 단어에만 반응할 뿐이며 복잡한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아이보다 감각도 뛰어난 말이다. 그에 비해 아이는 이제 추상적인 단어를 이해하고 문장을 구성하게 되며, 다만 강아지가 가지는 여러 본능적 행동은 배우지 못한다. 여기에서 각각의 선험적 지식은 특정한 분야에서 발현되며, 그것이 감각의 정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로 가설에 포함할 있다. 또한 인간의 경우, 언어적인 영역에 대해 선험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추론할 수도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용량의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도 있다. 만약에 가설이 맞다면, 왜소증 환자나 소두증 환자의 경우 선험적 지식의 차이가 발생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언어적 선험 지식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단지 몇가지 세밀한 기능에서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음 사실을 정리할 있다: 생명체의 선험적 지식은 하나의 가설로 유효하며, 분야에 대한 선험적 지식이 별개로 존재하는 역시 유효한 가설이다. 그리고 인간의 뇌에는, 언어 작동에 대한 선험적 지식이 내제되어 있다. 역시 유효한 가설이 된다. 이것이 우리의 언어 활동과 나아가 문명의 발전까지 증명할 있는 첫번째 가설이다.


언어를 배우는 방법

위에서 인간에게 선험적 지식이, 특히 언어 선험 지식이 있다는 논의를 했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자연스레 말을 배운다는 것인가? 선험적 지식은 어떤 조건 하에서 발현될까?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시각 기관의 능력이 발현되려면 시각적 자극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다르게 말하면, 시각적 자극을 계속 차단하게 되면 차단이 해제되어도 시각적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처럼 언어적 능력 역시 자극이 주어저야 발현되며, 이것은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 내에 제공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를 보통 유아기로 잡는데, 그렇다면 유아기 이후에 언어를 학습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미국에서 일어났던 아동학대 사건인 지니(Ginie) 사건[3] 이에 대한 예시가 있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아버자가 13살이 때까지 지니를 묶어두고 언어적 자극을 차단한 탓에 지니는 간단한 가지 단어만 익힌 상태였다고 한다. 이러한 지니를 교육시키기 위해 여러 언어학자가 노력했지만, 지니는 일반적인 수준의 언어 구사에 실패했다. 그녀의 내제된 선험 지식이 발현되지 못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특정한 시기에 적절한 자극이 주어진다면, 우리의 언어적 선험 지식이 발현될 있다라고 가설을 세울 있다. 물론 그렇게 발현된 선험적 지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전략에 따라 수행되는지는 마찬가지로 가설의 영역에 속해있다.


주어진 것과 너머의

앞서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선험적 지식이라는 가설에 대해 간단히 고민해 보고 인간에게 주어진 언어적 선험 지식을 어떻게 발현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가설이 성립한다면, 인간에게 주어진 지식은 인간을 사회적인 동물로 만들고, 서로의 생각을 융화시켜 높은 단계의 사고로 이어주는 지렛대가 되었으리라 추측할 있다. 하지만 신비한 지식이, 인간의 지성을 당연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선험적 지식이 주어졌음에도 무지했던 인간은 어떻게 우주의 원리와 인간 내면의 원리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는가? 이전에, 인간은 어떻게 수천년의 세월을 거치며 넓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나는 대답으로 교육 이야기하고 싶다. 가상의 외계인들이 종의 기억을 후손에게 유전적으로 전달하듯, 우리는 우리의 기억과 지식을 언어적으로 전달한다. 적절한 자극이 선험적 지식을 발현하고, 거기에 문자가 더해져 지식을 축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식이 차츰 쌓여갔기에,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원리를 찾아낸 뉴턴이 내가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있었던 것이다.

 

앞서 인용한 「산골 마을 선생님」을 조금 인용해 보자.

 

“(…) 종족은 세대 간에 지식의 축적과 전달 자체가 된다는 말인데 이는 문명의 진화에 필요한 것이지 않나!”

그들에게는 일정한 수량으로 종족 내에 분포되어 있는 특수한 개체가 있습니다. 개체는 세대의 생명체 사잉에서 지식 전달을 맡고 있습니다.”

(…)

세대 생명체 간에 지식을 전달했던 개체를 말하는 겁니까?”

선생이라고 부르지요.”

?”

이제는 사라진 고대 문명의 단어지요.”[4]

 

 

 


[1] 류츠신. (2019). 『고독한 진화』(박미진 ). 자음과모음. 201-202pp.

[2] 출처는 Daniela Isac, Charles Reiss (2013), I-Language, Oxford university press, 218-219pp. Bird brains 실험을 바탕으로 서술. 이후의 예시 역시 같은 저서에서 인용되었으며, 인용 범위는 216-220pp. 필요시 추가로 인용 범위를 기재함.

[3] https://m.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1011032152085 경향신문의 관련 기사 링크를 첨부한다.

[4] 류츠신. (2019). 『고독한 진화』(박미진 ). 자음과모음. 2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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