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生과 고민 - 「날개 또는 수갑」
물론 상관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쪽에선 작업중에 팔이 뭉텅 잘려져나간 사람이 있고
그 팔값을 찾아주려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다른 한쪽에선 몸에 걸치는 옷 때문에 거기에 자기 인생을 걸려는 분들도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문학과지성사) 수록작 「날개 또는 수갑」 269쪽
그런 일이 있었다.
불의의 시대가 있었고,
많이 배우고 많이 고민했지만 그 탓에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지나온 우리가 그것을 꾸짖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쉬운 복기復棋와는 별개로, 행하는 것은 어렵다.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연작은 그런 의미에서 시대의 반영이다.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 라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성남으로 밀려난 권은
죽음을 겪고 되살아나 굴하듯(마치 곡선처럼, 「직선과 곡선」 중에서) 살아갈 각오를 품는다.
그러나 치열한 생의 전선을 마주하고 다시 한번 죽음과도 같이 의식을 잃어감으로,
권은 다시 한 번 앞장서서 행동할 용기를 얻는다.
「날개 또는 수갑」은 한 시대를 반영한 단막극과도 같다.
회사의 옷을 입고 "온통 제복투성이인" 세상으로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이가 있고,
소심하게나마 그들은 제복을 거부하려고 하지만 어느 쪽에는
자기 팔 값을 찾으려고 투쟁하는 이도 있다.
어느 것이 잘나고 못난 일도 아니고 모두 일그러진 시대의 편린이나,
많이 배우고 많이 고민해서 부끄러운 시대였다.
이 작품을 읽으며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김 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난삽한 논의는
숨 막히는 생 속에서 의미 그대로의 生을 찾으려는 철학적인 논의이겠다.
그러나 아내의 시체를 팔고 生을 잇지 못해 죽는 이가 있으니,
그들의 논의는 역시 '죽어버린다'.
"김 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두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기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김승옥 『무진기행』(민음사) 중 「서울 1964년 겨울」 67쪽
혹여 여유가 난다면, 황석영의 『돼지꿈』이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같이 읽기를 추천한다.
「무진기행」을 처음 읽을 때가 떠오른다.
이해되지 않던 감정들 중에서, 부끄러움만은
지나며 조금씩 이해가 간다.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